노부부가 깔끔하게 살던 집을 매수하여 실거주하려다가, 이래저래 상황이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젋은 부부에게 세를 한 번 줬다. 내 명의의 생애 첫 집이었는데 경험없이 받은 세입자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. 거주하는 동안 이러쿵 저러쿵 불평이나 불만도 없고 임대차 기간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연락도 없었다. 참 고마웠다,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집 상태를 확인차 방문하기 전까지는.
세를 한 번 줬다가 간단히 수리해서 직접 들어가 살 예정이었기에 집 수리를 어느 범위까지 하는 게 좋을까 살피러 갔다. 그런데 이게 웬일, 베란다 벽이 곰팡이로 시커멓게 덮여 있는 게 아닌가. 세를 주기 전에는 이런 집이 아니었는데. 하루 중 세입자가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겨울인데도 집이 후끈하도록 보일러를 틀어놓고 있었다. 벽에 생긴 곰팡이를 손가락으로 훑으니 단번에 닦여나왔다. 겨울이라봐야 길어봐야 4개월인데, 한 달에 한 번만 대충 닦아도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텐데 싶어서 세입자가 좀 원망스러웠다. 집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, 결정했다.
- 베란다 벽체의 곰팡이는 내가 한 번 닦아보자. 여유가 되면 페인트 칠도 다시 해보자.
- 싱크대는 너무 낡았다. 교체하자
- 도배는 사람 불러서 새로 하고 조명은 직접 바꾸자.
곰팡이 제거는 세입자가 나간 다음 날부터 시작했다. 곰팡이 제거제를 여러가지 사서 테스트 해봤다.
- 벽체를 닦으면서 거품이 계속 나오는, 비누 섞인 제품은 탈락!
- 친환경, 무독성 등 좋은 말이 붙어 있어 왠지 비싸보이면 탈락!
- 특정업체에서만, 또는 배송으로만 구할 수 있는 제품도 탈락!
- (쓰다가 다 떨어지면 추가로 구매하기 불편)
본 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제품은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Clean OK. 집 근처 다이소에서 여러 통 사두고 작업을 시작했다. 준비물은 고무장갑, 물티슈, 곰팡이제거제, 마스크. 사놓긴 했는데 쓰지 않은 것들은 뉴트릴장갑(내구성이 약함), 헤라(세제를 뿌리고 긁으면서 닦아봤는데 효과 없음).
작업 전 곰팡이 상태.
작업 후 곰팡이 상태.
작업영상
수성페인트가 칠해진 벽면도 잘 닦였고, 졸라톤이 칠해진 굴곡있는 벽면도 제법 잘 닦였다. 원래 계획은 곰팡이를 제거한 다음에 물 묻힌 걸레로 한 번 더 닦기, 항균페인트 칠하기까지였다. 베란다 벽면 전체가 곰팡이로 뒤덮여있어 몇시간 동안 허리도 안펴고 닦은 뒤에 만사 귀찮아져서 물청소는 패스. 다음날 동네 페인트 가게에 가서 냄새없는 수성항균페인트, 코팅제, 붓, 마스킹테이프, 바닥에 깔아놓을 비닐까지 다 장만해왔다. 그런데 이런저런 이사준비로 지친 와중에 곰팡이제거에 이은 페인트작업은 너무 번거러울 것 같다는 아내의 의견에 페인트칠도 패스.
1년 정도 더 지내보고 곰팡이나 결로가 또 심하게 일어나면 그 때 다시 칠하는 걸로 이야기를 정리했다. 추가 페인트칠 없이 그냥 살면서 겨울을 보냈는데 찬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햇볕이 좋은 날, 또는 보일러를 좀 세게 틀어둔 날은 내외벽의 온도차에 의해 결로가 생기긴 했다.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나 짐을 쌓아놓은 부분에는 살짝살짝 곰팡이가 생기는 모습이 보였으나 겨울내내 통틀어서 두 번 정도, 물티슈를 들고 20분 정도씩 여기저기 닦아주고 나니 곰팡이가 번지질 않는다. 살림살이를 다 쌓아두고 다시 곰팡이 제거작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나면 하루에 한두번 정도 전체 환기를 시켜주기도 했지만.
눈에 띄는 부실공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, 곰팡이나 결로가 생기는데는 집 구조적인 문제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집 주인의 생활습관의 영향이 더 크다는 느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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